처음으로 아이를 할머니에게 맡겼다

처음으로 아이를 할머니에게 맡겼다

아이가 생긴 후 우리 부부는 둘 만의 데이트를 한 적이 없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는 내가 병원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태어난 후는 육아 하느라 그랬다. 그런데 이번에 아이가 생긴 후 부부의 첫 데이트를 할 기회가 생겼다. 바로 제주도 성산일출봉 등반 데이트였다.

비오는 날 성산일출봉
비오는 날 성산일출봉


아이가 생긴 후 첫 부부의 데이트

나는 사실 등산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산보다는 바다를 더 좋아하고, 시골보다는 도시를 더 좋아한다. 그런데 모처럼 단 둘 만의 시간을 보낼 기회가 생겼는데 그게 하필 등산이라 좋으면서도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처음으로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겼다.

이번에 시어머니와 함께 떠난 제주도 여행에서, 아이의 할머니와 고모가 아이를 봐줄테니, 둘이서 성산일출봉에 다녀오라고 하셨다. 사실 나는 아이를 우리 부부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처음인지라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이 말하기를, 엄마와 누나도 애를 보면서 지옥을 한 번 맛봐야 다음에는 다시는 그런 소리를 안 할 거라며, 맡겨 보자고 했다. 아이도 사회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덧붙이며 말이다. 그 말을 들으니, 왠지 설득 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어머님과 형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생각보다 잘 하는 아이

어쩐지 우리가 등산을 하는 동안에 어머니와 형님이 고생할 것 같아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걱정 되는 것도 있고 말이다. 우리 아기는 울면 소리가 엄청 커서 감당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우리 딸은 생각보다 우리와 떨어져 있는 시간을 잘 보냈다는 것이다. 어머님과 형님과 우리 딸은 성산일출봉 아래 있는 스타*스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스팀밀크도 잘 먹고, 울지도 않고, 나름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아이는 언제나 우리를 놀라게 한다. '너, 생각보다 사회성이 없지는 않구나?'

비 오는 날의 성산일출봉

우리의 오랜 만의 데이트는 등산, 게다가 날씨는 흐리는 것을 넘어서 비가 쏟아졌다. 이런 날씨에 등산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 했지만,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머님도 만약 못 올라갈 정도라면 입구에 출입금지가 붙을 것이라고 하시며, 한사코 우리 부부의 등을 떠 밀었다. 우리 어머님 강한 여성인 것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강한 분인 것 같다.

그런데 놀랍게도 비오는 날의 등산 데이트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그냥 비옷만 입고 비를 맞고 산을 오르내렸는데, 묘한 해방감 마저 들었다. 비가 오니 덥지도 않고, 오랜만에 운동도 되고, 특별한 추억을 쌓은 느낌이었다. 길도 잘 닦여 있어서 미끄럽거나 위험하지도 않았다. 

아쉬운 점은 올랐을 때 아래의 풍경이 잘 안 보인다는 것이었지만, 그것 마저 안개에 쌓인 풍경에서 특별한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날 우리의 데이트는 아이에게도 우리에게도 특별한 경험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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